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(문단 편집) === 1차 로마 진군 === 술라는 집정관이 된 뒤 동쪽 헬레니즘 제국 중 하나였던 [[폰투스]]의 [[미트리다테스 6세]]와의 전쟁을 준비했다. 당시 로마는 막 동맹시 전쟁이 끝난 상태였고, 동맹시들은 모두 로마 시민권을 수여받은 상태였다. 로마에선 이들에게 어떻게 선거구를 줄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마리우스가 이끄는 민중파는 이들에게 기존의 로마 시민들이 갖고 있는 선거구를 웃도는 숫자의 선거구를 줄 것을 원하였다. 원로원이 반대하자 이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그 때 로마에 있었던 술라는 마리우스의 집으로 피해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. 그 뒤 술라가 자신의 군단병이 주둔하고 있던 놀라(Nola)라는 도시로 빠져나가자 폭동을 일으켰던 민중파는 민회를 소집해 술라가 가지고 있는 미트리다테스 전쟁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마리우스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. 이는 민중파의 지나친 폭거였다. 그 이유는 군단 지휘권은 [[집정관]]이 이끄는 것이 상식이었는데 이를 박탈한다는 것이 상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. 그리고 이렇게 빼앗은 지휘권을 아무런 직책이 없는 민간인 신분의 사람[* 마리우스는 당시 아무런 직책이 없던 상황이었다.]에게 준다는 것 또한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. 놀라에서 이 소식을 들은 술라는 당연히 분노했는데 마리우스에게는 불행하게도 이 놀라에 집결된 로마 군단병이 이미 술라에게 사병화된 상태였다. 그 이유는 술라가 군단을 편성하면서 일선 지휘관들을 전부 자신을 따라 동맹시 전쟁을 수행했던 장교들로 구성했기 때문이었다. 이들은 우선 지휘권이 마리우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공표하기 위해 로마에서 파견 나온 사절들에게 돌팔매질을 해서 쫓아냈다. 그 뒤 술라는 6개 군단을 이끌고 로마를 향해 진군했다. 마리우스와 민중파는 이러한 술라의 행동에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현직 집정관이 자신에게 주어진 군단을 이끌고 로마 시를 공격한 일은 로마 건국 이래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. 즉, 술라는 민중파가 일으킨 폭거에 더 심한 폭거로 대항한 셈이었다. 따라서 마리우스와 그의 일파들은 로마 시를 버리고 달아났으며 로마를 장악한 술라는 마리우스를 '국가의 적'으로 선포한 뒤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폰투스 원정을 떠났다. 술라가 떠난 뒤, 두 집정관 중 하나인 [[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]]의 도움을 받은 마리우스는 자신을 따르는 군대와 함께 [[아프리카]]에서 귀국하여 로마에 입성했다. 마리우스는 로마에 입성하자마자 거부권을 행사하는 집정관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를 죽인 뒤, 술라를 '국가의 적'으로 선언하고 추방형을 내렸다. 그 뒤 마리우스는 7번째로 집정관에 선출되었으나 이미 71세의 [[노인]]이었던 그는 그 해에 죽고 말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